2008년 02월 22일
어리버리 장원준을 기록지에 남기다
KBO 기록강습회는 야구 경기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야구 규칙의 논리와 맥락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방법을 알면, 팀 사이의 승부 혹은 선수들의 몸동작을 지켜보는 것 외에도 야구의 즐거움 몇 가지를 더 느끼게 되다.
아래 동영상은 지난 해 4월 29일 잠실에서 펼쳐진 롯데와 두산 경기 가운데 한 장면이다. 고영민의 주루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롯데 야수들의 어설픈 수비 능력는 그저 한숨만.
저 상황에서 고영민에게 부여된 기록은 2루타. 비록 타구가 베이스에 맞은 덕에 2루를 밟았지만 야구는 "행운"을 기록하지 않는다. 헌데, 고영민은 롯데 내야의 어리버리함을 이용해 3루까지 차지해 버렸다.
위 상황은 야수의 수비 과정에서 나온 고영민의 주루 플레이가 낳은 결과인가, 아니면 롯데 야수 누군가의 미스 플레이에 의한 실책인가. 어떤 야구팬에게는 그닥 어렵지 않은 물음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저 상황에 대한 기록 규정은 명확하지 않다.
저 상황 이후 후속 타자인 안경현은 좌익수 플라이를 쳤고, 3루 주자 고영민은 홈에 들어와 득점을 했다. 만일 저 상황이 실책이 아니었다면 투수 장원준에게는 자책점이 주어지지만, 실책으로 기록한다면 장원준은 면죄부를 얻는다. 이것이 바로 위 물음이 중요한 이유다.
저 경기를 담당한 KBO 공식 기록원은 롯데에게 실책을 부여했다. 투수의 자책은 엄격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기록 원칙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 안경현의 희생플라이에 의한 고영민의 득점은 장원준의 자책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실책 여부의 판단이 투수의 자책에 대한 기록의 불문율에 의해 결정된 사례로 볼 수 있다.
남은 문제는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이냐이다. 용의자는 둘이다. 박현승과 장원준. 동영상에서 나타나듯 박현승은 2루에 도착한 고영민을 베이스에 묶어두는 플레이를 하지 않았고, 장원준은 비어있는 3루의 커버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하나의 추가 베이스 허용에는 하나의 실책이 주어지므로, 둘 가운데 한 명에게만 그 책임을 지워야 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앞서 말했듯이 박현승과 장원준의 플레이를 실책으로 판단할 명확한 규정이 야구 룰 북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룰북 10.13에는 "(야수의) 두뇌적 착오 또는 판단 착오는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는다"라는 조항마저 있다. 박현승과 장원준의 어리버리한 플레이에 이를 적용해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둘째, 룰북에 명시된 "미스 플레이"를 포괄적으로 해석하여 저 두 사람 가운데 하나에게 실책을 부여하더라도,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고영민이 3루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박현승과 장원준이 동시에 정신줄을 놓았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한 사람만 정신 차리고 있었어도, 롯데는 3루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당일 경기 공식 기록원은 투수 장원준에게 그 책임을 물어 실책을 부여했다. 나는 얼마전 KBO 기록위원회에 그 기록의 근거를 물었다. 하지만, 명쾌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다. 기록원들 사이에서도 꽤 논란이 되었던 상황이지만, 현장 기록원의 판단으로는 장원준에게 실책을 부여하는 게 낫다는 대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박현승이 멍청하게 마운드쪽을 바라보고 있던 모습을 기록원이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판단이고, 내 질문에 대답한 기록원도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저 플레이의 결과는 투수 장원준의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어리버리했던 건 사실이니 장원준이 억울할 일은 없다.
그런데, 투수 실책으로 진루한 주자의 득점은 그의 자책점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이유는 투구를 종료한 투수는 야수로 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투수의 자책은 그가 타자와 맞상대해서 던졌던 투구에 대한 결과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앞서 말한 투수 자책점 부여의 엄격성 원칙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실책 하나와 자책 1점을 바꾼 장원준에겐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장원준의 계산은 금새 뒤집어졌다. 김동주가 홈런을 쳐버린 것이다. 이때 기록원은 장원준이 실책을 하지 않았더라도 김동주의 홈런이 고영민을 안전하게 홈으로 불러들였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다. 그래서, 안경현의 희플에 의해 비자책으로 처리되었던 고영민의 득점은 다시 자책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이닝의 재구성"에 의한 자책 부여 원칙 때문이다. 실책으로 세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지 못한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득점이 투수에게 비자책점으로 기록되는 이유와 동일하다.)
이날 장원준은 자신의 어리버리함에 대한 죄값을 결국 치룬 셈이다.
P.S. 1
2007시즌 장원준의 실책수는 3개였고, 김명제와 더불어 투수 실책 순위 2위에 올랐다. 1위는 8개의 실책을 기록한 대니 리오스였다.
P.S. 2
아래 플래시는 위 상황을 야구기록지에 적은 것이다. 선수 이름 아래에 있는 버튼을 클릭하면 해당 선수의 타격 종료 직후 상황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 볼 수 있다. 위 경기의 KBO 공식 기록지는 여기를 클릭.
(위 플래시 파일을 이글루가 아닌 다른 사이트로 퍼갈 경우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나도 모릅니다.)
record_06.swf
아래 동영상은 지난 해 4월 29일 잠실에서 펼쳐진 롯데와 두산 경기 가운데 한 장면이다. 고영민의 주루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롯데 야수들의 어설픈 수비 능력는 그저 한숨만.
저 상황에서 고영민에게 부여된 기록은 2루타. 비록 타구가 베이스에 맞은 덕에 2루를 밟았지만 야구는 "행운"을 기록하지 않는다. 헌데, 고영민은 롯데 내야의 어리버리함을 이용해 3루까지 차지해 버렸다.
위 상황은 야수의 수비 과정에서 나온 고영민의 주루 플레이가 낳은 결과인가, 아니면 롯데 야수 누군가의 미스 플레이에 의한 실책인가. 어떤 야구팬에게는 그닥 어렵지 않은 물음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저 상황에 대한 기록 규정은 명확하지 않다.
저 상황 이후 후속 타자인 안경현은 좌익수 플라이를 쳤고, 3루 주자 고영민은 홈에 들어와 득점을 했다. 만일 저 상황이 실책이 아니었다면 투수 장원준에게는 자책점이 주어지지만, 실책으로 기록한다면 장원준은 면죄부를 얻는다. 이것이 바로 위 물음이 중요한 이유다.
저 경기를 담당한 KBO 공식 기록원은 롯데에게 실책을 부여했다. 투수의 자책은 엄격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기록 원칙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 안경현의 희생플라이에 의한 고영민의 득점은 장원준의 자책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실책 여부의 판단이 투수의 자책에 대한 기록의 불문율에 의해 결정된 사례로 볼 수 있다.
남은 문제는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이냐이다. 용의자는 둘이다. 박현승과 장원준. 동영상에서 나타나듯 박현승은 2루에 도착한 고영민을 베이스에 묶어두는 플레이를 하지 않았고, 장원준은 비어있는 3루의 커버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하나의 추가 베이스 허용에는 하나의 실책이 주어지므로, 둘 가운데 한 명에게만 그 책임을 지워야 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앞서 말했듯이 박현승과 장원준의 플레이를 실책으로 판단할 명확한 규정이 야구 룰 북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룰북 10.13에는 "(야수의) 두뇌적 착오 또는 판단 착오는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는다"라는 조항마저 있다. 박현승과 장원준의 어리버리한 플레이에 이를 적용해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둘째, 룰북에 명시된 "미스 플레이"를 포괄적으로 해석하여 저 두 사람 가운데 하나에게 실책을 부여하더라도,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고영민이 3루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박현승과 장원준이 동시에 정신줄을 놓았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한 사람만 정신 차리고 있었어도, 롯데는 3루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당일 경기 공식 기록원은 투수 장원준에게 그 책임을 물어 실책을 부여했다. 나는 얼마전 KBO 기록위원회에 그 기록의 근거를 물었다. 하지만, 명쾌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다. 기록원들 사이에서도 꽤 논란이 되었던 상황이지만, 현장 기록원의 판단으로는 장원준에게 실책을 부여하는 게 낫다는 대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박현승이 멍청하게 마운드쪽을 바라보고 있던 모습을 기록원이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판단이고, 내 질문에 대답한 기록원도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저 플레이의 결과는 투수 장원준의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어리버리했던 건 사실이니 장원준이 억울할 일은 없다.
그런데, 투수 실책으로 진루한 주자의 득점은 그의 자책점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이유는 투구를 종료한 투수는 야수로 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투수의 자책은 그가 타자와 맞상대해서 던졌던 투구에 대한 결과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앞서 말한 투수 자책점 부여의 엄격성 원칙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실책 하나와 자책 1점을 바꾼 장원준에겐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장원준의 계산은 금새 뒤집어졌다. 김동주가 홈런을 쳐버린 것이다. 이때 기록원은 장원준이 실책을 하지 않았더라도 김동주의 홈런이 고영민을 안전하게 홈으로 불러들였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다. 그래서, 안경현의 희플에 의해 비자책으로 처리되었던 고영민의 득점은 다시 자책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이닝의 재구성"에 의한 자책 부여 원칙 때문이다. 실책으로 세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지 못한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득점이 투수에게 비자책점으로 기록되는 이유와 동일하다.)
이날 장원준은 자신의 어리버리함에 대한 죄값을 결국 치룬 셈이다.
P.S. 1
2007시즌 장원준의 실책수는 3개였고, 김명제와 더불어 투수 실책 순위 2위에 올랐다. 1위는 8개의 실책을 기록한 대니 리오스였다.
P.S. 2
아래 플래시는 위 상황을 야구기록지에 적은 것이다. 선수 이름 아래에 있는 버튼을 클릭하면 해당 선수의 타격 종료 직후 상황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 볼 수 있다. 위 경기의 KBO 공식 기록지는 여기를 클릭.
| 1. 고영민이 2루타(직선 2개)를 쳤다. 2. 타구는 3루수(5) 왼쪽(•) 땅볼( 3. 3루 진루는 주루플레이에 의한 것(화살표)이다. 4. 실책(E)이 투수(1)에게 있다. | |
| 1. 뜬공(F)이 좌익수(7)에게 잡혔다. 2. 그 뜬공은 희생타(우측 하단 사각형)이다. 3. 투아웃(II)이 되었다. 4. 3루주자의 득점은 3번타자(三) 안경현의 타점(○)이다. 5. 그 득점은 투수의 비자책점임(마름모 안의 ○)이다. | |
| 1. 김동주가 홈런(직선 4개)을 쳤다. 2. 그 홈런 타구는 좌익수(7) 뒤(•) 뜬공( 3. 김동주의 득점은 투수의 자책(●)이다. 4. 홈런의 비거리가 115m이다. 5. 비자책(○)으로 표시되어있던 고영민의 득점을 투수 자책(●)으로 바꾼다. |
(위 플래시 파일을 이글루가 아닌 다른 사이트로 퍼갈 경우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나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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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2/22 16:05 | Player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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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경기였나, 기록지 쓰시는 거 잡힌 날이요- 그게 (뒷모습이지만) 오빠 첨 본 날이었는데 ㅋㅋ
(아마도 한명제) 캐스터가 대단하다고 칭찬해주는 거 들으면서 "오오~" 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훨씬 재밌네요?!
근데, 한경기에 기록원은 몇명이예요? 주자가 많을 경우에는 놓치는 움직임들도 많겠는데요?
야구장 가면 가끔 수첩에 타선 오더 쭉 쓰고 투수 쓰고 이닝 쓰고
2-3에서 삼진, 원볼에서 2유간 안타, 이렇게 풀어서 적곤 했는데
그 이유는 저렇게 기록지 적을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투구수 계산하는 데는 볼카운트 적는 게 나름 좋긴 하더군요;)
플래시로 기록지 쓰는 거 쉽게 이해하고 갑니다...ㅋㅋ
아참 이제서야 링크 추가합니다 ^^;
2루수가 체크했어도.. 뛰는 순간 테그를 안당하면 3루가 비어있어서 살게 되므로..
3루 비운 과가 더 큰듯.... 언더베이스도 비슷한 짓이 가능하죠.....
중간까지 나왔다가 베이스로 돌아가서 리터치후 슬슬 걸어 나와서 냅다뛰면
딜레이드 스틸처럼 딜레이드 언더베이스가 가능하긴 합니다......
쥰 / 실제 기록지엔 볼카운트도 하나하나 기록하지요. 우리 나라 야구장 전광판엔 투구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지 않는데, 그게 꽤 아쉬워요. 경기의 중요한 정보잖아요.
닥슈나이더 / 2루수 박현승이 3루가 비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면, 공을 잡은 후 고영민이 3루로 가지 못하도록 길목에 서 있었어야죠. 박현승의 잘못은 그러라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