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21일
6번 타자 이대호
2002년 4월 17일은 이대호가 처음으로 롯데의 선발 4번 타자가 된 날입니다. 입단 1년만에 팀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에게 돌아가는 자리를 꿰찬 거지요.
수원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였는데, 이대호는 그 날 세 타석에서 3루 땅볼, 삼진, 그리고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습니다.
이대호가 선발 4번 타자로 나와 첫 안타를 친 날은 같은 달 25일이었습니다. 트윈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만자니오를 상대로 2루타를 쳤지요.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문학에서 이승호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쳤습니다. 그렇게 이대호의 개인 통산 1호 홈런은 그의 선발 4번 타자 출전 첫 홈런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대호가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역할을 수행한 것은 그 해 6월까지였습니다. 7월부터 출전수가 줄어들었고 여름이 지나고 나서는 경기장에조차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뷁골프씨와 이대호의 악연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대호가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그러니까 2002년 여름부터 2003년 시즌 전체, 가 지나고 나서 맞이한 2004년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신임 양상문 감독은 그에게 클린업 트리오 가운데 한 자리를 부여했지요. 주로 페레즈가 4번, 이대호가 5번, 그렇게 이대호는 자이언츠의 중심 타선에 붙박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10월 3일 이후 이대호는 단 한 번도 3, 4, 5번 이외의 타순에 배치된 적이 없습니다.
물론, 2008년 7월 18일까지의 얘기입니다. 이 날 잠실 야구장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상상님이 내게 물었습니다. "오빠, 대호가 4번 타자가 아닌 적이 있었어요?"
3번 조성환, 4번 가르시아, 5번 강민호, 그리고 6번 이대호... 이렇게 적힌 전광판에 나도 꽤 놀랐습니다. 아, 드디어 감독이 결단을 내렸구나.
이대호가 4번 타자가 아닌 적이 있었냐는 물음에 나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대답에 자신이 없었던 터라 집에 돌아와 옛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양상문 감독이 이대호에게 4번 타자, 그러니까 팀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의 자리를 부여한 이후, 4번 타자 이대호의 위치는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가끔씩 3번과 4번 자리에 배치된 적도 있지만, 그것은 롯데 최고 타자 이대호의 위상과 관계 없는 감독의 전술적 판단 때문이었지요.
그렇게, 이대호는 3년 동안 전혀 흔들림 없이 롯데의 4번 타자였습니다.
2007년 5월 11일부터 2008년 7월 17일까지 179경기 연속 선발 4번 타자였던 이대호. 지금 그가 흔들립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테고, 팀 성적에 대한 책임도 느꼈을테고, 자신의 뜻 대로 움직이지 않는 배트에 대한 원망도 더욱 커졌겠지요.

야구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모든 사람의 여정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입니다. 스물 일곱 살의 이대호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야구와 삶에 필연인 부침의 시간을 그가 슬기롭게 이겨내길 바라고, 믿습니다.
그가 내 눈 앞에 첫 안타를 보여주었던 그 날 이후 나는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대호가 프로에서 친 두 번째 안타였고, 처음으로 외야로 날려 보낸 안타였으며, 잠실 구장에서 친 첫 번째 안타였습니다.
그 날은 2001년 9월 22일이었습니다(그러하니, 나리야... 나는, 어쩌면 너도, 대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인 거야...).
수원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였는데, 이대호는 그 날 세 타석에서 3루 땅볼, 삼진, 그리고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습니다.
이대호가 선발 4번 타자로 나와 첫 안타를 친 날은 같은 달 25일이었습니다. 트윈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만자니오를 상대로 2루타를 쳤지요.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문학에서 이승호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쳤습니다. 그렇게 이대호의 개인 통산 1호 홈런은 그의 선발 4번 타자 출전 첫 홈런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대호가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역할을 수행한 것은 그 해 6월까지였습니다. 7월부터 출전수가 줄어들었고 여름이 지나고 나서는 경기장에조차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뷁골프씨와 이대호의 악연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대호가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그러니까 2002년 여름부터 2003년 시즌 전체, 가 지나고 나서 맞이한 2004년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신임 양상문 감독은 그에게 클린업 트리오 가운데 한 자리를 부여했지요. 주로 페레즈가 4번, 이대호가 5번, 그렇게 이대호는 자이언츠의 중심 타선에 붙박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10월 3일 이후 이대호는 단 한 번도 3, 4, 5번 이외의 타순에 배치된 적이 없습니다.
물론, 2008년 7월 18일까지의 얘기입니다. 이 날 잠실 야구장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상상님이 내게 물었습니다. "오빠, 대호가 4번 타자가 아닌 적이 있었어요?"
3번 조성환, 4번 가르시아, 5번 강민호, 그리고 6번 이대호... 이렇게 적힌 전광판에 나도 꽤 놀랐습니다. 아, 드디어 감독이 결단을 내렸구나.
이대호가 4번 타자가 아닌 적이 있었냐는 물음에 나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대답에 자신이 없었던 터라 집에 돌아와 옛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 2006년 | 2007년 | |
총출전경기수 | 126 | 122 | 121 |
선발출전경기수 | 123 | 121 | 120 |
선발 3번타자 출전경기수 | 0 | 11 | 2 |
선발 4번타자 출전경기수 | 123 | 93 | 118 |
선발 5번타자 출전경기수 | 0 | 17 | 0 |
2005년, 양상문 감독이 이대호에게 4번 타자, 그러니까 팀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의 자리를 부여한 이후, 4번 타자 이대호의 위치는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가끔씩 3번과 4번 자리에 배치된 적도 있지만, 그것은 롯데 최고 타자 이대호의 위상과 관계 없는 감독의 전술적 판단 때문이었지요.
그렇게, 이대호는 3년 동안 전혀 흔들림 없이 롯데의 4번 타자였습니다.
2007년 5월 11일부터 2008년 7월 17일까지 179경기 연속 선발 4번 타자였던 이대호. 지금 그가 흔들립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테고, 팀 성적에 대한 책임도 느꼈을테고, 자신의 뜻 대로 움직이지 않는 배트에 대한 원망도 더욱 커졌겠지요.

야구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모든 사람의 여정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입니다. 스물 일곱 살의 이대호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야구와 삶에 필연인 부침의 시간을 그가 슬기롭게 이겨내길 바라고, 믿습니다.
그가 내 눈 앞에 첫 안타를 보여주었던 그 날 이후 나는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대호가 프로에서 친 두 번째 안타였고, 처음으로 외야로 날려 보낸 안타였으며, 잠실 구장에서 친 첫 번째 안타였습니다.
그 날은 2001년 9월 22일이었습니다(그러하니, 나리야... 나는, 어쩌면 너도, 대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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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월 22일 LG : 롯데전 후기 by 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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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7/21 11:34 | Player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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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아마도 대호 별명 빅보이라는걸 첨 말한게 로베르토 페레즈였던거 같아요..
오래전일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대호가 페레즈랑 막 클린업을 이룰때..라이언 잭슨이랑 말이죠..
아마 그때 쯤 페레즈가 빅보이의 스윙을 봐라..
곧 엄청난 선수가 될거라고 했는데...
역시 그랬죠..
카림에게...선구안을 줄수 없다면...
페레즈의 히팅능력을 주고 싶어요..카림의 그 장타력이 줄지 않고 얻을수만 있다면..
대호...요샌 정말 젤 미워 죽겠지만...ㅜ.ㅜ
한참 혼자 고군분투하고, 또 날아댕겼던 재작년과 작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롯빠 1人으로써는,
진심으로 미워할 수 없어요. 아니, 사실은 너무 안타까워요.
아마 모든 롯빠들이 그럴테지요....대호야, 제발 살아나줘ㅠ
->그럼 이대호의 프로 첫 안타는 무려 '내야안타'였단 말인가요?^^
금요일 경기를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문자중계로 '6번 이대호'를 확인하는 순간, 아 드디어 로감독이 칼 뺐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참 착잡해지더군요. 마지막 타석의 안타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경기 본 사람들의 말을 주워 들으니 뽀록안타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이나마 위안을 해 보기도 했고..
올림픽 브레이크 전에는 '6번 이대호'만 잘 해 줄 수 있더라도 만족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올림픽 브레이크 끝나고 나면 다시 '4번 이대호'로 복귀해 줘야겠죠.. 제발..
그러던 것이 2006년 중반부터 역전이 되면서 지금의 대호가 됐죠. 그걸 보면 참 대단하긴 대단합니다. 친구 김태균이 좀 엘리트 코스를 순조롭게 밟아 온 인상이라면, 대호는 좀 바닥에서 기다가 갑자기 성장한 인상이랄까요?
대호는... 소년 가장... 딱 그 이미지입니다. 아무리 못해도 깔 수가 없어요. 저는 ㅜ.ㅜ
그때 마이로우 카림을 대호 앞뒤에 붙여 보아요...
- 올초 한화하군가 만루홈런 칠때 그런 모습 있잖아여~~~~
얼른 살아나주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대호를 보면서, 성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할까 생각하니 안쓰럽기만 해요.
하지만 누구도 도와줄 수가 없는거니까, 이겨낼 거라고 믿고 기다려야죠.
9월 22일에 첫 안타를 친 녀석이라니.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