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혁과 이원석, 그리고 볼넷

- 두 타자가 있다.

타자 서정남은 30타석에서 볼넷 없이 30타수 10안타를 쳐서 타율이 0.333 이다. 
타자 장천하은 30타석에서 안타 없이 볼넷만 10개를 얻어서 20타수 무안타로 0.000의 타율을 기록했다.

두 타자 모두 희타, 희비, 실책 등등 타수를 타석보다 적게 만드는 모든 이벤트는 만들지 않았다. 따라서, 두 타자의 출루율은 모두 0.333이다.


- 여기서 질문) 

서정남 선수와 장천하 선수 가운데, 31번째 타석에서 1루를 밟을 확률이 높은 선수는 누구인가?

그렇다. 이 사례와 질문은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은 안타와 볼넷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계속성(consistent) 있는 이벤트인가를 묻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안타를 많이 쳤던 선수와 볼넷을 많이 얻었던 선수의 향후 가능성을 따져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 생산 능력과 볼넷 생산 능력의 계속성을 비교하는 것은 야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움이 된다.


- 아무튼, 위 질문에 대해 많은 야구통계쟁이들은 조심스럽게 장천하 선수에게 베팅할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이렇다.

1. 안타, 볼넷 등 타자의 모든 공격 이벤트는 아래와 같은 A, B, 그리고 C의 합에 의해 결정된다.

2. A = 타자의 능력, B = 상대 투수와 야수의 능력, 그리고, C = 선수 외적 요인(경기 상황, 심판 판정, 그라운드 상태, 날씨 등등) 이다.

3. 안타의 경우, 타자의 능력 A1 = 공에 대한 컨택트 능력 + 파워 이다.

4. 볼넷의 경우, 타자의 능력 A2= 선구안 (plate dicipline) 이다.

5. A1이 안타에 미치는 영향보다 A2가 볼넷을 얻는데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6. 즉, B+C는 볼넷보다 안타에 더 큰 영향을 준다.

7. 게다가, 안타를 만드는 A1은 볼넷을 얻기 위한 A2보다 기복이 심하다.

8. 따라서, 31번째 타석에서 1루를 밟을 확률은 장천하 타자가 더 크다.


- 위 생각의 근거는, 수 년간 수 많은 타자들의 기록을 검토한 결과 타율의 일정함보다 볼넷당 타석 수(PA/BB) 혹은 볼넷/삼진 비율(BB/SO)의 일정함이 더 크다는 야구통계쟁이들의 경험적 자료에 있다.

간단히 말하면, '선구안이 좋은 타자는 다음해에도 믿을 수 있지만, 타율만 좋은 타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좋은 타자가 되려면 선구안이 좋아야 한다'는 야구의 속설은 그래서 속설에 그치지 않고 진실에 가까운 명제가 된다.

장효조, 양준혁, 그리고 장성호를 생각해 보라. 그들의 훌륭함은 단지 높은 타율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들의 볼넷 기록을 살펴 보라. 야구통계쟁이들의 위와 같은 주장이 허튼 생각이 아니란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 정리하자.

출루율이 비슷할 때, 
타석당 볼넷이 많은 선수가 타율이 높은 선수보다 다음 타석에서 1루를 밟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주장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볼넷은 타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그 지표는 (PA/BB, 타석/볼넷)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즉, 몇 타석마다 볼넷을 얻는가를 살펴 보는 것이다.


- 여기서 두 번째 질문)

타율 0.291, 출루율 0.339 인 타자 A는 15.5 타석마다 1개의 볼넷을 얻는다 (PA/BB=15.5)
타율 0.221, 출루율 0.326 인 타자 B는 7.7 타석마다 1개의 볼넷을 얻는다 (PA/BB=7.7)

두 타자 모두 현재 100 타석 이상 출전했으므로, 통계의 유의미성을 확보하기 위한 표본의 수는 충분하다고 가정하자.

타자 A와 타자 B 가운데, 다음 타석에서 1루를 밟을 확률이 높은 선수는 누구인가?

아니, 질문을 보다 쉽게 바꾸자. 타자 A가 타자 B보다 더 좋은 타자인가?

보기 :

1) 확실히 그렇다
2) 대체로 그렇다
3) 그렇지 않다. 둘은 비슷하다
4) 그렇지 않다. 타자 B가 더 좋은 타자다
5) 잘 모르겠다. 판단하기 어렵다

참고 자료 1
[롯데 자이언츠 타자들의 타석, 타율, 출루율, 장타율, PA/BB 기록]
이름
타석
4사구
타율
장타율
출루율
OPS
PA/BB
이대호
219
47
0.361
0.686
0.493
1.179
4.7
최기문
15
3
0.250
0.250
0.400
0.650
5.0
호세
100
14
0.256
0.337
0.360
0.697
7.1
최경환
60
8
0.216
0.294
0.322
0.616
7.5
박기혁
139
18
0.221
0.230
0.326
0.556
7.7
박현승
109
13
0.363
0.385
0.434
0.819
8.4
황성용
77
9
0.203
0.250
0.297
0.547
8.6
정수근
136
14
0.228
0.307
0.310
0.617
9.7
이승화
228
19
0.294
0.353
0.355
0.708
12.0
김문호
24
2
0.318
0.455
0.375
0.830
12.0
손인호
27
2
0.130
0.174
0.192
0.366
13.5
강민호
207
14
0.221
0.343
0.276
0.619
14.8
이원석
201
13
0.291
0.335
0.339
0.674
15.5
정보명
197
12
0.299
0.384
0.339
0.723
16.4
손용석
37
2
0.324
0.412
0.351
0.763
18.5
김주찬
169
9
0.252
0.321
0.292
0.613
18.8
리오스
88
3
0.265
0.410
0.284
0.694
29.3

(타자 A : 이원석, 타자 B : 박기혁) 

참고 자료 2
[OPS 리그 상위 타자들의 타석, 타율, 출루율, 장타율, PA/BB 기록]
이름
타율
장타율
출루율
OPS
PA/BB
이대호
0.361
0.686
0.493
1.179
4.7
김태균
0.339
0.626
0.471
1.097
4.8
김동주
0.315
0.534
0.450
0.984
5.0
양준혁
0.302
0.599
0.434
1.033
5.2
브룸바
0.281
0.448
0.403
0.851
5.8
장성호
0.297
0.503
0.408
0.911
6.3
크루즈
0.339
0.672
0.439
1.111
6.4
이숭용
0.360
0.453
0.447
0.900
7.4
이종욱
0.301
0.372
0.394
0.766
7.5
최정
0.269
0.463
0.350
0.813
9.3
전준호
0.320
0.367
0.392
0.759
9.5
최준석
0.247
0.470
0.317
0.787
10.1
조인성
0.306
0.469
0.364
0.833
11.3
정근우
0.308
0.487
0.365
0.852
12.6

(브룸바와 정근우 가운데 누가 더 좋은 타자인가)

참고 자료 3
[8개 구단 팀타율, 팀출루율, 팀장타율, 팀PA/BB 기록]
팀명
타율
장타율
출루율
OPS
PA/BB
한화
0.257
0.402
0.346
0.748
8.2
두산
0.260
0.369
0.343
0.712
8.9
삼성
0.237
0.343
0.323
0.666
8.9
SK
0.253
0.376
0.336
0.712
8.9
KIA
0.242
0.347
0.324
0.671
9.2
현대
0.269
0.375
0.345
0.720
9.7
롯데
0.268
0.362
0.339
0.701
10.2
LG
0.260
0.364
0.331
0.695
10.3

(두산과 롯데 가운데 어느 팀의 공격력이 더 좋은가)

(위 기록은 모두 2007 시즌 현재까지의 기록임, 정렬은 PA/BB가 좋은 순서임)


- 6월 11일 박기혁이 2군에 내려갔다. 그리고, 그는 70타석 이상 출전한 자이언츠 타자 가운데 이대호 다음으로 PA/BB가 좋은 타자다.

- 물론, 이원석은 박기혁보다 장타율에서도 앞선다. 그래서, 이원석의 OPS는 박기혁의 그것보다 0.118 높다. 둘의 PA/BB 차이는 둘의 OPS 차이를 상쇄할 수 있는가. RC/25를 비교해 볼까. 귀찮다. 내 직관으로는 아마도 이원석이 조금 낫지 싶다.

- 그런데, 둘의 수비 능력을 생각한다면, 두 선수가 팀 승리에 기여하는 정도에 대해서 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 (이원석의 공격 능력+ 수비 능력) > (박기혁의 공격 능력 + 수비 능력), 이 부등식은 과연 옳은가?

- 강병철 감독의 현명한 선택이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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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넘나드는 | 2007/06/11 22:26 | Player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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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nakin at 2007/06/12 14:08
개인적으로 A급 타자와 B급 타자를 구분하는건 다른게 아닌 선구안과 참을성입니다. 특히 슬럼프가 왔을때도 끝까지 물고늘어지면서 걸어나갈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없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또 갠적으로 타자를 평가할때 전 아예 타율 무시합니다. 출루율>>장타율만 봐도 대충 어느정도는 판단이 되는데 굳이 쓸데없는 타율을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구요..
Commented by 넘나드는 at 2007/06/12 14:27
anakin / 그러게요, 타율은 너무 헛점이 많은 스탯이지요.

팀 득점과의 상관도를 계산해 봐도... 출루율>장타율>>>>타율.... 이런 순서입니다(출루율과 장타율은 거의 비슷하거나, 출루율이 약간 높죠).

역시나..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얘기 말대로, OPS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입니다.

헌데, 최근엔 OPS외에 GPA(Gross Production Average)가 유용하게 쓰이고 있어요.

OPS의 단점인, 출루율에 대한 과소평가와 수치에 대한 직관적 독해력 부족...을 나름 해소해줍니다.

자세한 건... 제 블로그의 http://toto5071.egloos.com/202256 페이지에서 살펴보시길...
Commented by Anakin at 2007/06/12 14:44
세이버매트리션들 기록이야 몇년전부터 저도 관심을 가지고 봤던지라 딱히 새로운건 없지만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

실제로 한국 야구에선 세이버매트리션들의 관점에서 봤을땐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상당히 많이 일어나고 있는게 아쉽습니다. 물론 MLB와 KBO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엔 선수들의 수준 차이나 기록들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더욱 아쉬운건 많은 야구팬들이 만루상황에서 8타수 3안타 뭐 이런 쓸데없는 스탯가지고 이 선수는 만루에 강해 어쩌구 하면서 정작 중요한 본질을 알지 못하는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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