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02일
기타 등등...(6)
1
오세철은 수 십 년 전부터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아니, 세상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을 이제와서 잡아가두려하다니요. 나처럼 딱히 별다른 생각없이 사는 이들이야 괜찮겠지만, "생각의 다름"이 범죄가 되고, 그 이유로 국가의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들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내가 오세철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게 아마 2학년 가을이었을 겁니다. 그 때도 그는 노동자 무슨무슨 단체에서 높은 직함을 갖고 있었지요. 하지만, 나는 그 양반으로부터 전혀 "의식화"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너무 어려웠기도 했지만, 한 여학생을 쳐다보느라 수업 내내 다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인하자면, 나는 경제학과 학생도 아니었고, 오세철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그 전엔 전혀 몰랐습니다. 내가 그 수업을 신청한 이유의 전부는 오로지 그녀였어요.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에, 짧은 청치마, 스트라이프 셔츠, 그리고 흰 운동화를 즐겨 신던 그녀는 눈부시게 예뻤습니다.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지만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남자랍시고 괜히 거들먹거리고 싶어하는 거. 하지만, 정작 옆에 졸졸 따라다닌 사람은 나였습니다. 말도 잘 듣고, 귀찮은 일도 착착 해 주고,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녀는 내 재롱(?)을 잘 받아줬습니다. 그런 게 연정이었는지, 아님 일종의 피버였는지, 이젠 잘 기억 나지 않습니다. 사랑니가 조금 아팠던 그 해 가을이 무척 즐거웠다는 것 말고는.
2
친구 하나가 사랑니를 뽑았습니다. 삐뚫게 솟아올라 결국엔 수술을 했다더군요. 실은 내 사랑니도 수술을 통해 제거했습니다. 8년 전인가요. 아이들을 무척 싫어하던 치과의사에게 시술을 받았습니다. 치과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싫어하니 그 양반 인생도 참 고달프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치과의자에 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긴, 밥벌이로 하는 직업이 자신의 기호, 취향, 기질 혹은 성격과 꼭 맞는 경우가 세상에 몇이나 됩니까. 대부분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왔다갔다하는 것이겠지요.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이란 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흔한 빈말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한 후배가 이직 문제로 내 조언을 구했습니다. 회사 생활이 도통 즐겁지 않다는 게 그 녀석의 불만이었지요. 이야기를 한참 들은 후에 내가 말했습니다. "때려 쳐..." 그리곤, 그게 다닙까,라는 눈빛이 녀석 얼굴에 비치길래 한 마디 더 해줬습니다. "근데 말이지, 새로운 곳이 다시 지루해져도 날 타박하진 마!"
3
애니메이션 아티스트가 꿈이었던 친구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전혀 엉뚱한 일을 하고 있지만요. 그 친구 머릿속이 요새 복잡한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안좋은 일에 시달려 심신이 지쳐있거든요.
그 녀석을 데리고 한가람미술관에 갔습니다. 픽사의 장단편 캐릭터와 스케치를 봤더니 머릿속이 온통 울긋불긋해졌습니다. 피규어로 만들어진 월-E의 눈동자가 어찌나 슬프던지 그것을 담은 유리 상자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기념품으로 가져온 설리(Sulley)와 마이크(Mike)의 팝아웃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는데, 무척 귀엽습니다.
사실 나는, 픽사보다 드림웍스 쪽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드림웍스가 더 짙은 농도의 내러티브를 가졌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움과 진보에 대한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픽사 애니메이션에 늘 감탄합니다. 뭔가, 자신이 가려는 방향을 우직하게 걷는 장인들의 모습이랄까요. 존 라세터를 비롯한 픽사 아티스트들의 스케치를 보면서 그 경탄심이 더 높아졌습니다.
픽사 20주년 기념전은 이번 일요일이 마지막입니다. 그 전에 한 번 더 갈 생각입니다. 같이 간 녀석이 계속 콜록거리는 탓에 그 예쁜 그림들을 내 눈에 충분히 담지 못했거든요.
오세철은 수 십 년 전부터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아니, 세상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을 이제와서 잡아가두려하다니요. 나처럼 딱히 별다른 생각없이 사는 이들이야 괜찮겠지만, "생각의 다름"이 범죄가 되고, 그 이유로 국가의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들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내가 오세철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게 아마 2학년 가을이었을 겁니다. 그 때도 그는 노동자 무슨무슨 단체에서 높은 직함을 갖고 있었지요. 하지만, 나는 그 양반으로부터 전혀 "의식화"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너무 어려웠기도 했지만, 한 여학생을 쳐다보느라 수업 내내 다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인하자면, 나는 경제학과 학생도 아니었고, 오세철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그 전엔 전혀 몰랐습니다. 내가 그 수업을 신청한 이유의 전부는 오로지 그녀였어요.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에, 짧은 청치마, 스트라이프 셔츠, 그리고 흰 운동화를 즐겨 신던 그녀는 눈부시게 예뻤습니다.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지만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남자랍시고 괜히 거들먹거리고 싶어하는 거. 하지만, 정작 옆에 졸졸 따라다닌 사람은 나였습니다. 말도 잘 듣고, 귀찮은 일도 착착 해 주고,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녀는 내 재롱(?)을 잘 받아줬습니다. 그런 게 연정이었는지, 아님 일종의 피버였는지, 이젠 잘 기억 나지 않습니다. 사랑니가 조금 아팠던 그 해 가을이 무척 즐거웠다는 것 말고는.
2
친구 하나가 사랑니를 뽑았습니다. 삐뚫게 솟아올라 결국엔 수술을 했다더군요. 실은 내 사랑니도 수술을 통해 제거했습니다. 8년 전인가요. 아이들을 무척 싫어하던 치과의사에게 시술을 받았습니다. 치과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싫어하니 그 양반 인생도 참 고달프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치과의자에 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긴, 밥벌이로 하는 직업이 자신의 기호, 취향, 기질 혹은 성격과 꼭 맞는 경우가 세상에 몇이나 됩니까. 대부분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왔다갔다하는 것이겠지요.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이란 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흔한 빈말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한 후배가 이직 문제로 내 조언을 구했습니다. 회사 생활이 도통 즐겁지 않다는 게 그 녀석의 불만이었지요. 이야기를 한참 들은 후에 내가 말했습니다. "때려 쳐..." 그리곤, 그게 다닙까,라는 눈빛이 녀석 얼굴에 비치길래 한 마디 더 해줬습니다. "근데 말이지, 새로운 곳이 다시 지루해져도 날 타박하진 마!"
3
애니메이션 아티스트가 꿈이었던 친구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전혀 엉뚱한 일을 하고 있지만요. 그 친구 머릿속이 요새 복잡한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안좋은 일에 시달려 심신이 지쳐있거든요.
그 녀석을 데리고 한가람미술관에 갔습니다. 픽사의 장단편 캐릭터와 스케치를 봤더니 머릿속이 온통 울긋불긋해졌습니다. 피규어로 만들어진 월-E의 눈동자가 어찌나 슬프던지 그것을 담은 유리 상자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기념품으로 가져온 설리(Sulley)와 마이크(Mike)의 팝아웃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는데, 무척 귀엽습니다.
사실 나는, 픽사보다 드림웍스 쪽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드림웍스가 더 짙은 농도의 내러티브를 가졌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움과 진보에 대한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픽사 애니메이션에 늘 감탄합니다. 뭔가, 자신이 가려는 방향을 우직하게 걷는 장인들의 모습이랄까요. 존 라세터를 비롯한 픽사 아티스트들의 스케치를 보면서 그 경탄심이 더 높아졌습니다.
픽사 20주년 기념전은 이번 일요일이 마지막입니다. 그 전에 한 번 더 갈 생각입니다. 같이 간 녀석이 계속 콜록거리는 탓에 그 예쁜 그림들을 내 눈에 충분히 담지 못했거든요.
# by | 2008/09/02 11:12 | * it's mine * | 트랙백 | 덧글(6)











